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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5 15:37

AMD의 역사와 과도기

조회 수 2639
개인용 컴퓨터 산업은 인텔에서 만든 8080 CPU와 DRAM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에 MITS에서 만든 알테어 컴퓨터가 사람들의 예상을 깨고 폭발적으로 팔리면서 시작되었다.

필자는 지난 3회에 걸쳐 마이크로프로세서에 관한 역사를 인텔 중심으로 적었다. 인텔과 다른 경쟁자들의 경쟁은 386이 나올 때까지는 대등했다고 볼 수 있었다. 286까지는 인텔의 라이선스를 받은 다른 업체들의 CPU가 시중에 유통되고 있었고 인텔도 이런 상황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메모리 업체였던 인텔이 일본 업체들에 의해 메모리의 비교 우위를 빼앗기고 메모리 시장에서 스스로 퇴출을 결심할 때까지 인텔 내부에서는 메모리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일본 업체는 다시 한국과 미국의 미크론 제품과 경쟁을 벌였다. 10여년이 지나자 한국의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메모리는 첨단의 생산/설계기술이라기보다는 수율과 에러율로 승부하며 가격 싸움이 첨예하게 이루어지는 분야로 변경되었고 대량 생산이 필요했기 때문에 점차 컴퓨터 산업의 ‘쌀농사’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쌀농사를 지으면 먹고 살 수는 있지만 이윤이 높은 장사는 아니다. 메모리의 주문이 몇 년 치씩 밀리고 이윤이 높던 초창기의 호황시대는 점차 끝나가고 있었다.

대안

1985년과 1986년 메모리 산업의 강자 인텔은 큰 적자를 내고 과연 존립이 가능할 것인가를 걱정하기 시작했으며, 수천 명의 직원이 해고되었다. 인텔의 경영진들은 1986년을 보내면서 최악의 해가 끝나는 것을 감사히 여길 정도였다. 이 때를 전후하여 인텔은 메모리 산업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그해에 80386이 발매되면서 인텔은 기적적으로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탈출구를 찾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홀대받던 존 크로포드의 팀에 의해 만들어진 80386에 의해 인텔은 이듬해에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 그 후 수년간 인텔은 80386에 대해 독점적인 가격을 행사했다.

사실 32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에서 가격과 성능으로 인텔의 80386과 맞설 수 있을 규모라든가 기술력 그리고 마케팅 측면에서 어느 정도 대등한 경쟁을 벌일 수 있었던 회사는 사실상 모토로라밖에 없었다. 다른 칩들은 지명도가 높지 않은 신생 회사의 제품이거나 회사의 명망이 있어도 너무 성능이 떨어지는 관계로 32비트이긴 해도 실용화할 수 없는 제품들이 대부분이었다.

Great Microprocessors of the Past and Present(http://www3.sk.sympatico.ca/jbayko/ cpu.html)를 관리자가 써놓은 평가에 의하면 모토로라의 16비트 버전인 68000은 PDP-11이 LSI화된 LSI-11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제품이었다고 한다. 32비트로 넘어오면서 모토로라는 MMU(Memory Management Unit)가 없는(CPU 외부에 따로 MMU 칩을 추가해야 하는) 32비트인 68020을 첫 모델로 내놓았고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와 애플의 매킨토시 기종에서 이들을 채택하였다. 그 후속타인 68030은 파이프라인을 갖추었고 MMU를 내장하였다. 68040은 486처럼 FPU(부동소수점 처리기)를 내장하였다. 80×86과 680×0으로 표기되기도 했던 두 칩은 서로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경쟁은 이미 상대적으로 많은 보급이 이루어진 인텔의 ×86에 유리했다.

회사가 어려운 상태였던 인텔은 PC 제조자들이 빠른 시일 내에 32비트 기반의 PC와 워크스테이션을 생산할 수 있도록 IBM을 위시한 제조업체들을 지원하였고, 결국 컴팩이 32비트의 데스크프로를 생산하며 32비트 데스크탑 컴퓨터의 시작을 알렸다. 컴팩의 데스크프로는 폭발적으로 팔려나갔고 컴팩은 대기업이 되었다. 컴팩의 발표가 있은 지 얼마 후부터 다른 PC 호환업체들의 386보드 생산이 줄을 이었다. 책상 위의 고급 PC로서만 구현된 것이 아니라 System V나 Mach 같은 중요한 유닉스의 구현도 이들이 생산한 보드를 기반으로 이루어졌다. 고급 데스크탑과 워크스테이션의 경계는 32비트가 시작되는 시점에서도 애매하게 출발하였다(80년대 후반에 필자도 포트란 프로그램을 386에서 수행시키고 커피를 마시며 계산이 끝날 때까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줄을 서있던 기억이 있다. 2년 후에는 가격이 많이 떨어진 386DX25를 간신히 한 대 구입할 수 있었다. 그 이듬해에는 486을 구입하고 386은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다시 그 다음 해에는 펜티엄을 구입했다).

32비트 프로세서가 큰 돈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업체들은 80386의 클론을 만들기 위해 전력을 투구했다. 27만개의 트랜지스터를 사용한 386은 당시로서는 매우 복잡한 칩에 해당하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386의 클론을 독자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업체나 연구소가 몇 개 되지 않는다는 통계가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아무튼 AMD(Advanced Micro Devices)는 80386의 생산 후 얼마 후부터 Am386이라는 80386과 호환되는 칩을 생산하게 되었다. 인텔의 독주에 제동이 걸리게 된 것이다. Am386이 나온 이후로 더 이상 인텔은 시장가격 조정권을 독점할 수 없었다. Am386에 대한 법적 대응과 제소가 이어졌으나 법정은 Am386의 생산을 인정하는 쪽으로 기울어졌다. 그 이후부터 분명히 독자적인 IA-32 호환구조를 지닌 저렴한 대안이 제시되었다. 얼마 후 사이릭스나 다른 업체들로부터도 클론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텔은 486부터 대안을 강구하다가 펜티엄에 이르러서는 이들 업체를 잠시 따돌리는 듯 했다. 그러나 얼마 후부터 펜티엄과 같은 소켓을 쓰고 성능이 유사한 칩들이 발매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인텔의 제소에 의해 펜티엄 II부터는 인텔 칩들과 장착 소켓은 호환되지 않으면서 명령어는 호환적인 고성능 프로세서들이 다시 다른 회사들에 의해 발표되었다. 이들이 판매에서 인텔을 능가한 적은 없었으나 어느 정도 서로 견제하고 경쟁하는 작은 생태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대안적 선택의 중심에는 AMD가 있었다. 대안이 생기면서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조금은 더 넓어졌고 황당하게 책정될 수 있는 가격의 횡포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대안과 자유는 동의어가 아니지만 대안이 전혀 없다는 것은 그 사실 자체로 하나의 속박이다. 어떤 사람들이 인텔이나 마이크로소프트같이 상업적으로 성공적인 회사들에 알러지 반응을 보이는 것은 대안들이 자꾸 없어지지나 않을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실제로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는 이러한 일이 벌어졌다. 인텔은 경쟁자이자 동반자인 AMD를 여러 차례 공격한 적이 있었다.

AMD의 탄생

AMD는 인텔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했다. 1968년 페어차일드 반도체의 창업멤버이자 반도체 업계의 스타였던 밥 노이스와 고든 무어가 회사를 떠날 무렵에는 페어차일드에 관련되어 있던 많은 기술 인력들이 반도체 회사를 창업했거나 창업하려 하고 있었다. 공백이 되어버린 페어차일드는 어쩔 수 없이 모토로라로부터 레스터 호건(Lester Hogan)을 영입했다. 초고액의 연봉과 스톡옵션을 보장받고 노이스와 무어를 괴롭혔던 회계 상의 간섭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받았다. 이러한 대우는 그 후 실리콘 밸리의 스타급 임원의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레스터 호건은 취임하자마자 회사의 최고 관리자들을 전부 해고하기 시작했는데 한사람만이 예외였다. 제리 샌더스(Jerry Sanders)라는 회사의 마케팅 담당이사였다. 샌더스는 페어차일드의 영업사원 시절에 초기 가격이 100달러이던 1211이라는 트랜지스터를 군수용으로 소량이지만 고가인 150달러에 팔아서 회사를 놀라게 한 적도 있고 얼마 후 저렴한 1달러짜리 진공관이 출시되자 같은 트랜지스터를 1/100도 안되는 1.05달러에 대량으로 팔아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회사에는 대량 생산으로 가격을 맞출 수 있다고 우겼다고 한다.

알콜 중독이 있던 기계공 출신의 아버지가 술에 절어 지내는 동안 싸구려 임대 아파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샌더스는 어린시절 영화배우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고 한다. 전기공학을 전공하던 일리노이 대학 시절 풋볼 경기가 끝나고 패싸움 도중 턱뼈와 코가 부러지고 얼굴에 큰 상처를 입은 후 영화배우의 꿈을 접고 더글라스 항공사에 엔지니어로 들어갔다. 항공기의 에어 컨디션 설계를 하던 샌더스는 얼마 후 전자산업이 태동하자 자신이 마음속으로 바라던 화려한 생활을 하려면 많은 돈을 받는 전자부품 영업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페어차일드 영업사원으로 들어갔다. 잘 생긴 외모와 화려한 화술의 수완가였던 그는 페어차일드에서 고속 승진했다.

얼마 후 회사 마케팅 부문의 최고 책임자가 된 샌더스는 실리콘밸리로 옮겼다. 헐리우드에 대 저택을 마련하고 화려한 생활을 하던 샌더스는 전자산업 이외에도 영화와 음반사업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고 한다(조지 길더는 『마이크로코즘』에서 샌더스의 특이한 성향이 성장환경 때문일 수도 있다고 적고 있다. 정체 모를 미인을 동반하고 회사의 기공식에 나타나기도 했고 오로지 사치스러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주식지분을 팔아 치우면서도 저돌적인 경영을 했던 특이한 인물인 샌더스의 이야기는 조지 길더의 책에 자세히 나온다).

이런 생활은 호건이 페어차일드로 오면서 점차 불안하게 되었다. 호건은 너무 인력이 많다는 이유로 샌더스를 해고했다. 샌더스는 몇 주를 쉬면서 자신의 할 일을 생각해 보고는 페어차일드의 최고 영업사원이었던 에드 터니에게 반도체 사업을 해보자고 권유했다. 8명의 창업멤버가 모아지고 캐피털 그룹에서 이들의 매니저 역할을 해주기로 했다. 처음에는 신생 기업인 인텔에 돈을 투자한 아서 록을 만났다. 상세한 사업계획서를 들여다 본 아서 록은 너무 많은 반도체 회사가 생겼기 때문에 반도체 회사를 세우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이야기했고 샌더스가 기술자가 아닌 마케팅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관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시간이 지나도 투자하려는 사람은 없었다(샌더스가 처음 접촉한 아서 록은 이른바 벤처 캐피탈을 처음으로 시작한 사람이다. 페어차일드마저도 아서 록의 투자 모집으로 창설되었다. 샌더스는 업계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은 투자자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샌더스의 사업계획서는 인텔의 창업자 밥 노이스의 관심을 끌었다. 이 회사가 만들고자 하는 반도체는 아날로그가 아니라 디지털이며 결국 인텔의 경쟁 제품을 만들고자 한다는 사실도 꿰뚫어 보았다. 제품의 이면에 관여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다 알고 있었다. 노이스는 이 회사가 신제품 개발과 생산보다는 영업에 더 강하다는 사실도 간파했다. 노이스는 AMD가 인텔의 경쟁자가 될지도 모르지만 약간의 모험을 즐기기로 했다. 노이스는 AMD에 대한 최초의 창업투자가가 되었고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AMD의 모금 캠페인에 큰 도움이 되었다. AMD는 150만불 가량을 목표로 모금을 했고 마지막 날까지 목표액에는 조금 미달된 상태였다. 벤처 캐피탈과 약정된 금액에 조금 미달되는 금액이 모였으나 마지막 5분전 마지막 투자자의 송금으로 간신히 자금 모집에 성공했다. 이리하여 1969년 6월에 AMD가 창업되었다. 인텔의 경우 투자자들이 사업계획서조차 읽지 않고 노이스와 무어가 만드는 회사이기에 곧바로 투자하겠다고 나선 것과는 대조적인 출발이었다.

초기 약 5년간은 주로 특별한 신제품이 아닌 다른 메이커의 복제품 반도체를 생산했고 제품특성을 약간 개량하여 부가가치를 높였다. 마케팅은 매우 순조로웠고 회사는 성장하기 시작했다. AMD의 첫 제품은 첫해에 발매된 Am9300라는 시프트 레지스터였다. 그 다음 해에 이르러서야 회사의 첫 고유 제품인 Am2501이 나왔다. AMD는 저가격에 고성능 클론 칩들을 대량생산하는 마케팅을 시작했다. 일종의 마케팅 슬로건인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라는 개념이 첫 시작이었다. 그 ‘좋은 제품’이 반드시 AMD가 오리지널일 필요는 없었다.

성장과 경쟁

AMD가 성장기에 접어든 1974년경부터 사람들은 중요한 특성을 하나 발견했다. 바로 집요함 또는 저돌성(tenaciousness)이다. 좀처럼 포기하지 않는 이상한 특성이 AMD의 사업영역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AMD가 생산하는 제품은 다른 회사의 오리지널 제품들과 가격과 성능에서 강한 경쟁력을 유지했다. 인텔조차 휘청거리던 석유파동 기간 동안에도 AMD의 매출은 떨어지지 않고 해마다 60% 이상씩 급성장했다. 이 기간 동안에 대량생산을 위한 공장과 설비가 대폭 확충되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유례가 없는 설비의 대 확충을 시도했다. 회사는 서서히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초기에 AMD는 인텔이 아니라 페어차일드의 칩들이 주요 경쟁 대상이었다. AMD는 처음부터 무리한 승부를 거는 제품개발 계획이 없었다. 제일 중요한 문제는 제품이 기존의 잘 나가는 제품과 핀 호환성(pin compatibility)이 있어서 곧바로 대체 가능하며 성능이 조금만 더 좋으면 나머지는 기존 고객들이 판단한다는 식이었다. 소프트웨어의 호환성과는 다른 종류의 호환성이지만 역시 ‘호환성’이라는 단어는 마술적인 효력이 있었다. AMD는 새로운 설계로 제품의 성능을 몇 배씩 증가시키는 데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제품은 최대한 기존 제품과 유사해야 했다. 페어차일드는 이런 사실에 긴장하여 외판원들에게 AMD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도록 지시하였으나 이때 사원 교육용으로 사용된 메모가 유출되어 별로 지명도가 없던 AMD에 대한 고객들의 관심이 증가하여 오히려 판매가 신장되는 결과가 되었다고 한다. 새로운 곳에서 만드는 AMD의 칩은 낙후된 페어차일드 공장에서 만드는 칩보다 같은 성능이더라도 더 특성이 좋았다. AMD는 MIL 규격을 만족시키며 군대에 납품하게 되면서 소비자들로부터 신뢰성이 높다는 평가까지 확보했다. 회장과 사장이라는 직함을 모두 차지한 제리 샌더스가 회사 내에서 독단적이며 이기적인 행동으로 공동 창업자들을 제거해가며 왕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던 당시에도 AMD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었다. 관리능력이 뛰어나긴 했지만 개인적으로는 방탕하며 이사회와 마찰이 끊이지 않던 샌더스의 독재에도 불구하고 AMD는 성장했다. 제품과 전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AMD의 마케팅과 생산 전략은 당시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것이었다.

당시 업계의 관행은 지적소유권 같은 개념이 미약하여 이렇게 2차 공급자가 되는 데에는 큰 진입장벽이 없었다. 2차 공급자라는 것은 1960년대에 미 국방장관이던 맥나마라가 구상한 것이다. 맥나마라는 군사용의 공공자금이 과다 지출되는 중요한 이유가 하나의 업체로부터 모든 군수 부품이 조달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최소한 2개 이상의 업체로부터 부품을 구입하도록 지시하였다. 공급자가 하나만 존재하는 경우 제품 가격은 공급자가 결정하게 되는데 시장 개념은 없어진다. 공급자가 둘 이상 존재하는 경우에는 경쟁이 일어나고 가격은 효율적으로 시장 원리에 따라 낮추어진다. 컴퓨터 업계 역시 이러한 사실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공급자가 하나만 존재하는 경우 수십 달러짜리 부속이 없으면 수십 만 달러가 넘는 컴퓨터는 무용지물이 되어 부품이 조달될 때까지 창고에 쌓이게 되어 의도적으로 적어도 2개 이상의 회사로부터 부품을 구입하려 하였다.

2차 공급자가 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합법적인 방법은 원래의 고유 설계자로부터 라이선스 계약으로 설계도를 공급받아 제품을 생산하는 방법이고 다른 하나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일일이 새로운 설계를 해가며 특성이 가장 비슷한 제품을 만드는 방법이다. 중간적인 방법으로 칩을 분해하고 약으로 칩의 표면을 용해하거나 연마하여 층별로 사진을 찍어서 마스크를 만들어낸 후 칩을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그 당시에는 이러한 방법으로도 칩들을 생산하곤 했다. AMD의 엔지니어였던 찰스 시몬센은 2차 공급자용 칩을 생산하는 데에는 비상한 재주를 보이곤 했다. 때로는 납품할 칩의 규격표만 주어도 칩을 생산하여 납품하는 경우도 있었다.

업계의 관행이 그러했기 때문에 인텔 역시 2차 공급자가 있어야 다른 회사에 납품이 가능했다. 2차 공급자가 필요하다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중에 인텔의 회장이 된 앤디 그로브는 처음부터 인텔이 자사 제품에 2차 공급자를 두는 일에 대해 반대했다. 그러나 업계의 관행을 무시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텔조차도 2차 공급자로 납품에 몇 번 참여하곤 했기 때문에 2차 공급자의 존재가 필요악이라고 볼 수만은 없었다. 그것은 하나의 관행이었다.

1974년이 되자 AMD는 Am9102라는 RAM을 생산하며 RAM 시장에 뛰어 들었다. 같은 해부터 인텔의 8080A도 생산했다. AMD 고유의 4비트 슬라이스 마이크로프로세서인 Am2901도 발매되었다. 많이 쓰이지는 않았으나 이 프로세서는 4비트의 기본 유닛으로 연결하여 8비트나 16비트의 프로세서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인텔에서만 생산하던 EPROM도 생산하려 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페어차일드가 아니라 인텔이 벤치마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AMD는 회사가 커지면서 재빠른 2차 공급자로서 성장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인텔은 이미 매출액 면에서 AMD의 3배 이상 큰 회사가 되어 있었고 AMD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EPROM(요즘의 플래시와 비슷한 성격의 ROM)에 인텔이 특허권 침해라는 이유로 제소하며 강력하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큰 마진을 내기 전에 법적인 문제에 직면한 AMD에서는 인텔의 노이스 회장에게 중재를 요청했다. 교섭 결과 AMD는 인텔에 복제품 EPROM에 대해 돈을 일부 지불하기로 하고 8085라는 인텔의 신형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라이선스 생산하기로 했다. 대신 자신들이 개발하여 군수용으로 엄청난 마진을 내던 부동소숫점 처리기의 2차 라이선스를 인텔에 주기로 동의했다. 8비트 마이크로프로세서에서 자일로그의 Z80에 밀리고 있던 인텔로서는 프로세서 생산에 있어 8086이 나올 때까지 믿음직한 2차 공급자를 두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이때가 1976년이고 이때부터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대한 두 회사의 기묘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시장 규모는 아직 미약했다.

8086, 80286 그리고 80386

8085의 계약을 체결한 AMD는 인텔이 8086의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하길 기대하였으나 인텔로부터는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다. AMD에서는 인텔의 허락이 없이 8086의 복제품을 생산하거나 독자적인 16비트를 만들든가 그것도 아니면 자일로그의 Z8000이라는 16비트 칩의 2차 생산자가 되는 방법이 있었다. AMD의 최초의 선택은 인텔이 아닌 자일로그 쪽으로 기울어졌다. 인텔에서 8080 프로세서를 설계한 유명한 엔지니어인 페데리고 파긴의 지도하에 설계된 Z8000은 과거의 칩과는 호환성이 없었고 발매시기도 점차 느려지기 시작했다. 3년이나 걸려 설계를 마친 Z8000이 발매된 시기에는 8086이 이미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자일로그의 마케팅 능력은 매우 약했다. AMD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16비트로 진입할 기회를 놓친 것이다.

AMD가 다시 16비트 시장에 진입하게 된 것은 우연하게도 IBM의 선택 때문이었다. IBM에서는 돈 에스트리지의 지도 하에 16비트 PC를 만드는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하여 빠른 시간 내에 프로토타입을 완성하였다. 계획이 진행되면서 IBM은 인텔에 2차 공급자를 요구했다. 비밀리에 2차 공급자를 원하는 업계의 거인인 IBM의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었고 무언가 중요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인텔은 고민에 빠졌다. 2차 공급자를 빠른 시간 내에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해지자 경쟁자격인 AMD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다시 한번 AMD는 인텔의 2차 공급자로 선정되었다.

AMD는 인텔로부터 여러 번 수모를 겪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장기간에 걸친 권리를 인정받고자 했다. 평상시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거래가 이루어졌다. AMD는 인텔로부터 장기적인 권리보장과 기초 기술까지 제공받지 못한다면 2차 공급자가 되지 않겠다고 버텼다. 이 계약은 5년이 지나면 상대방에게 계약 파기를 1년 전에 통고해야 한다는 조항 하에 1982년에 체결되어 10년간 지속되었다. IBM PC가 생산된 후 마이트로프로세서 시장 규모는 수천 배로 커졌고 AMD는 라이선스 생산으로 8088과 80286에서 상당한 몫을 챙겼다.

인텔은 그 후 AMD 이외에도 10여 개의 회사에 8086의 라이선스를 판매하였다. 이들 회사 중 NEC 같은 회사는 기술적인 검토를 거듭하여 자체적인 내부 마이크로코드를 만들어 내고 인텔에 로열티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텔은 NEC를 제소하였으나 법정에서 NEC는 독자적인 작업으로 8086과 호환되는 마이크로코드를 만들어 승소하였다. 이 소송에서 호환 칩을 만드는 경우에도 자체적인 마이크로코드를 만들어 내는 경우에는 하나의 독립된 저작권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남겼다. 그러나 마이크로코드가 독립적인 저작권이므로 인텔의 마이크로코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경우에는 인텔의 저작권을 인정해야 했다. 인텔에 반드시 불리한 소송만은 아니었다.

1986년이 되자 갑자기 PC 시장과 반도체 시장에 갑작스러운 침체기가 도래했다. 시장은 아무런 준비 없이 변화기에 직면했다. 모든 반도체 업체의 판매량 격감과 함께 인텔마저도 거의 문을 닫을 지경에까지 이르기도 했다. AMD도 점차 시장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회사를 변모시켜야 하는 도전에 직면했다. 반도체의 수율증가가 절실해졌고 제조기술도 1미크론 이하의 공정으로 이행해야 했다. 사업의 다각화가 필요하다는 것도 명백해졌다. 이때부터 AMD의 제조라인에서는 많은 종류의 독자적인 반도체들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시장을 장악한 입장에서 인텔은 AMD를 배제하기 시작했다. 80286에 대한 라이선스 비용을 높이며 차세대 프로세서인 80386에서는 2차 공급자가 필요가 없을 것이 확실하므로 AMD와의 계약을 파기하고 라이선스를 주지 않는 전략을 내부적으로 채택했다. 계약이 이루어진지 불과 4년 만에 갑자기 모든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 386이 시중에 퍼지는 동안 인텔은 AMD를 히타치나 NEC와 합작시키지 않으면서 80286에 붙잡아 놓고자 했다. AMD 내부에서는 29300이라는 32비트 칩을 준비해 놓기는 하였으나 이 칩은 80386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성능만이 80386의 전부는 아니었다. 인텔은 부동소숫점 연산기인 80287의 라이선스조차 AMD에게 내어 주려 하지 않았고 80287을 클론한 AMD는 나중에 인텔의 제소에 휘말린다.

인텔이 AMD에 80386을 주지 않을 것이 확실해지고 있을 무렵 인텔의 일방적인 1982년 계약에 대한 파기 통고가 있자 두 회사 사이의 관계는 급속하게 냉각되었다. 1987년부터 AMD는 원만한 합의를 위해 법원에 중재를 요청했는데 이 중재 요청은 당시의 빨리 끝날 것으로 보이던 경우와 달리 5년 이상을 끌면서 1992년에서야 종결되었고 최종 판결은 1994년에 내려졌다. 거의 국회청문회를 방불케 하는 반도체 사업 최대의 소송은 수백 명의 증인과 수만 건에 달하는 문서 그리고 기록적인 증인 출석일수 등의 기록을 만들게 되었다.
부동소숫점 연산기에 대한 평결도 1994년에야 끝이 났다(지적재산권 보호에 민감해진 인텔은 자신의 80387 코프로세서를 리버스 엔지니어링하고 성능을 개선한 ULSI를 법원에 제소하여 몇 년 동안을 꼼짝 못하게 묶어 놓았다). AMD가 중재를 요청하였으나 인텔은 시간을 끌었고 1990년에야 중재가 재개되었다. 중재자는 인텔이 AMD에 386을 공급하지 않아도 계약 위반이 아닌 상황이며 AMD는 독자적으로 386을 추진하다 어려움을 겪자 인텔과의 재계약에만 매달리는 점 등을 비난하고 인텔에 대해서는 합의사항의 이행을 좌절시킨 냉혈적 불신풍토의 조장자라고 비난했으며 386의 라이선스를 주지 않기로 결정하면서도 마치 줄 것처럼 행동한데 대해 비판했다. 중재안은 영구적 반독점적으로 로열티가 없는 라이선스를 주도록 판결했다. 인텔은 중재안에 항의하였으나 1994년에 주 고등법원에서 중재안을 지지하는 판결이 내려졌다.

AMD는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인 회사였다(인텔과 호환되어야 한다는 제약 조건만 없다면 성능이 더 좋은 칩을 개발할 수도 있지만 마케팅 측면에서는 문제가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중재가 진행되는 와중인 1989년 AMD에서는 샌더스의 지휘 하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386 클론을 만드는 롱혼(Longhorn)이라는 프로젝트가 진행되었다(롱혼은 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하는 소의 한 종류이다). 2년 이내에 사용가능한 프로세서를 만들어 내는 것이 프로젝트의 목적이었다. 1990년 여름에는 생산가능한 칩이 나왔다. 이 프로세서는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80386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었다. 1988년부터는 SDC(Submicron Development Center)를 설립하고 자체적인 생산기술 향상에 들어갔다. 법원의 승소 판결이 떨어질 무렵에는 Am486까지 생산해 놓고 시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1990년 AMD가 내놓은 80287의 클론은 인텔의 마이크로코드를 그대로 사용했고 사실은 Am286도 마찬가지였다. 법원의 중재안에서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었다고 한다.

1992년의 또 다른 평결에서는 AMD의 287이 명백한 클론으로 저작권을 침해한다고 되어 있다가 1994년에는 또 뒤집혔다. AMD의 주가는 마이크로코드 소송의 판결이 있을 때마다 요동쳤다. Am486의 발매를 앞두고 법원에서 마이크로코드에 대한 심사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몇 개월 동안 인텔의 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마이크로코드를 만들었던 사건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백 줄의 코드가 그대로 사용된 것이 뒤늦게 밝혀졌다. 결국 Am486의 발매 당시에는 인텔의 마이크로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깨끗한’ 코드가 사용되었다.

평화 또는 생태계 공존

90년대 중엽이 되자 다시 시장이 활성화되고 평화스러운 시기가 왔다. 1994년의 판결로 마이크로코드를 다시 쓸 수도 있고 자체적인 마이크로코드도 확보한 AMD와 인텔은 1995년부터는 갑자기 화해 무드로 돌아섰다. 시장이 다시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몇 년 동안의 싸움에 모두 지쳐버린 것이다. AMD는 거의 문을 닫을 뻔 했고 인텔도 경영에 쏟을 시간을 소송에 소모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른바 떡을 놓고 싸우기보다는 파이를 키우는 편이 나을 것이라는 상식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시장은 MS의 윈도우 95가 나오기 시작할 즈음에 멀티미디어 PC의 수요가 증가하면서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인텔은 이미 펜티엄을 확보하고 있었으며 경쟁우위를 확보하는 듯했다. 펜티엄에 이르러 겨우 다른 RISC와 대등한 성능비교를 시도할 수 있게 되었다. 펜티엄이 발매되기 전에 다른 RISC도 별로 대단할 것이 없다는 주장을 유포시키며 떠오르는 RISC 아키텍처로 고객들이 떠나는 것을 막았다. 이 전략은 주효했다. 그러나 인텔 역시 고민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94년에는 유명한 펜티엄의 부동소숫점 버그가 있었다. 사소한 잘못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무리한 출시를 하여 수억 달러의 손해가 발생하였다. CNN이 이를 대서특필하자 IBM이 공식적으로 펜티엄 칩의 구매를 거부하여 신용이 실추되고 위기상황이 발생하였다. 이 문제는 판매한 모든 칩을 바꿔 주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얼마 후 MS가 윈도우 NT를 발표하는 것으로 NT는 사실 ×86에서 다른 프로세서 기반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운영체제였기 때문에 인텔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다른 프로세서로의 이행이 지지부진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다. 또 다른 문제는 RS/6000의 후손이라고 할 수 있는 IBM, 모토로라, 애플의 합작인 파워(Power) 아키텍처의 등장이었다. 다행히 파워PC 601과 604의 성능이 예상보다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인텔은 안도할 수 있었다. 파워PC는 엄청난 기대와는 달리 판매량이 적었다.

어느 것 하나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모적인 소송에만 매달릴 수도 없기 때문에 인텔과 AMD 간의 화해가 이루어졌다. 인텔이 경쟁자들을 몰아붙이는 거의 10년 동안 ×86 아키텍처의 독점으로 인텔은 컴퓨터 산업이 어려운 시기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AMD는 간신히 지켜온 2차 공급자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긴 하였으나 386과 486의 시장은 1994년에는 이미 소멸되기 시작했다. AMD는 그 후로 3~4년 동안 486의 고성능 버전을 발매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별로 얻은 것이 없는 싸움이었지만 소비자는 비교적 저렴한 대안이라는 선택의 자유를 얻었다.

과거의 소송들에서 인텔은 많은 것을 얻었다. AMD는 이미 486에서 자신들만의 마이크로코드를 사용했지만 펜티엄급 이상에서도 AMD는 자신들만의 마이크로코드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졌다(어렵다고 예상되었으나 곧바로 AMD의 K5와 사이릭스의 6×86이 자신들의 마이크로코드를 구현하여 제작되었다. 속도 면에서 약간의 저평가가 있고 발열 면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FPU 역시 문제가 있었다. 그러나 저예산으로 컴퓨터를 구입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1996년의 계약에서 제시된 소켓 스틸(Socket Steal)의 금지로 인텔의 마이크로프로세서를 위한 소켓에 AMD 칩을 꽂는 것도 불가능해졌다. 보드의 호환도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인텔 프로세서의 2차 공급자라는 지위도 애매해졌다. 소비자는 이제 AMD를 완전히 다른 프로세서로 인식해야 했다. 이 간단한 조치로 인텔은 단기적으로 많은 득을 보았다.

인텔은 멀티미디어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AMD에 MMX의 사용권을 주었으나 개량하거나 변경은 금지했다. AMD의 K6와 사이릭스의 M2가 출시되자 MMX에서 부당한 이득을 얻는다는 이유로 다시 이들을 제소했다. 1996년 AMD는 작은 회사인 NexGen을 인수하고 K5에서 봉착했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하고 K6를 만들어 다시 인텔에 도전했다. NexGen의 코어 인수로 자체 개발을 해야 하는 부담에서 벗어나고 시간적인 여유를 벌 수 있었다. 인텔의 MMX 확장도 칩에 포함되어 시장성이 있었고 저가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펜티엄 프로와 펜티엄 II 때로는 펜티엄 III까지 효과적으로 공략했다(언제나 싼 것을 좋아하는 필자도 버틸 수 있을 때까지 K6, K6-2를 이용했다).

AMD는 즉각 항소하고 인텔을 비난했다. 이 소송은 AMD와 사이릭스의 칩 발매 직전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분히 펜티엄 프로의 시장에 대한 마케팅적 방어대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화해가 이루어지고 매출신장이 이루어질 때에도 인텔은 가장 효과적인 경쟁자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AMD는 불과 수년 만에 인텔의 그늘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AMD의 K-7 코어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속도 면에서는 인텔 프로세서와 대등하거나 가끔씩은 앞서게 되었다. 내부 버스는 알파의 EV-6를 사용하게 되어 인텔의 GTL+ 버스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의 내부 구성을 갖게 되었다. 이 버스는 나름대로 성능 면에서 유리했다. 발표 당시에는 경쟁모델이던 인텔의 펜티엄 III보다 더 빠르다고 주장할 수 있는 FPU마저 갖게 되어 과거의 컴플렉스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K-7부터 거의 30년간 계속 밀리던 게임이 적어도 성능 면에서는 조금 대등해진 느낌이다. K7 이후에는 슈퍼칩인 애슬론-64와 인텔의 IA-64의 대결이 또 남아 있다. 필자로서는 꼭 드래곤볼을 보는 느낌이다. 경쟁적인 선수들끼리의 발전관계 또는 비슷한 경쟁자끼리의 공진화라고 할 수 있는 이 게임은 사실상 두 참가자의 이상한 성능/가격 경쟁으로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시장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지금도 필자의 시스템에서는 인텔과 AMD의 칩들이 나름대로 속도 경쟁을 벌이고 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는 정말로 잘 모르겠다. 컴퓨터의 무심한 주인은 인텔 인사이드의 로고나 AMD 마크도 붙이지 않는다. 뻔뻔스럽게도 저렴하고 빠르고 안정적인 시스템을 계속 원할 뿐이다. 한편으로는 가격에 걸맞지 않는 고성능에 놀라면서도 그렇다. 하지만 그 속에는 30년 정도의 역사가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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