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포항시에 사는 정모씨(40)는 지난해 말 컴퓨터 작업을 하다가 짜증이 났다. 컴퓨터가 갑자기 굼벵이가 된 것. 혹시 하는 마음에 바이러스 감염 여부를 체크해 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치료를 요하는 악성코드가 우르르 떴다. 정씨는 1개월만 사용하는 조건으로 치료프로그램을 다운받아 급한 불을 껐다. 그러나 최근까지 정씨의 휴대폰 요금으로 매달 2090원이 빠져 나갔다. 뒤늦게 이같은 사실을 확인한 정씨가 통신사로 연락을 취하자 통신사 측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안티스파이웨어 업체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러나 그 업체와는 전화연결이 되지 않고, 탈퇴방법도 복잡해 탈퇴도 못하고 있다.

전남 여수시에 사는 김모씨(50대)도 악성코드를 무료로 검사해 준다는 말에 혹해 프로그램을 설치했다가 꼼짝없이 1년(2만5000원) 동안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안티스파이웨어 업체가 “약관에 1년치 결제만 가능하게 돼 있다”며 사용해지를 거절한 것. 최근 악의적 목적으로 제작된 악성 프로그램(또는 악성코드)을 제거하는 안티스파이웨어(Anti-spyware)의 이용이 급증하면서 이에 대한 소비자 불만도 높아지고 있다.

올 1월부터 9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안티스파이웨어 관련 소비자 불만 건수는 모두 742건으로 전년동기에 비해 57.2%나 급증했다. 주요 소비자 불만 유형으로는 ▲1개월이나 일정 기간만 사용하겠다고 계약했음에도 자동연장돼 요금이 결제되는 경우가 가장 많았으며 ▲의무사용기간(90일, 120일, 2년, 5년 등)이 적용된다며 계약해지를 거절하는 경우 ▲본인의 동의 없이 결제하는 경우가 그 뒤를 이었다.

또 사용자의 동의 없이 임의로 설치돼 팝업창이 수시로 띄워져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일부 업체는 설치 동의 과정에서 아예 ‘취소’나 ‘닫기’ 버튼을 없애 사용자가 무조건 안티스파이웨어를 설치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하고 있다. ‘설치’와 ‘확인’ 버튼만 있어 어떤 것을 클릭하더라도 프로그램이 자동 설치되는 것.

또 설치 창에 스크롤바를 없애 이용약관을 읽을 수 없게 만든 프로그램도 있다. ‘자세한 이용약관 보기’ 버튼을 클릭하면 이용약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해당 프로그램의 홈페이지로 이동해 직접 찾도록 한다.

이렇듯 이용약관을 보기 힘들게 한 것은 이용약관이 소비자에게 그만큼 불리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이 닥터바이러스, 스파이닥터, PC클리어, PC닥터, PC세이퍼 등 58개 안티스파이웨어 업체를 대상으로 이용약관을 조사한 결과 34개 업체의 약관이 ‘자동연장결제’와 관련한 조항을 두고 있었으며, 26개 업체의 약관은 ‘90일이나 120일 등의 의무사용기간’을 설정해 놓는 등 불공정한 조항을 두고 있었다.

이와 함께 대부분의 업체가 이용약관에 사업자가 제공하는 서비스 등으로 인해 고객이 입은 손해에 대해 책임 일체를 면하는 내용만 규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소비자원은 “최근 들어 안티스파이웨어 시장이 성장 추세에 있고, 소비자 불만이 급증함에 따라 표준이 되는 약관 제정이 필요하다”며 “표준약관 제정 때는 ‘자동연장결제’ ‘계약해지 및 환급금’ ‘손해배상 및 면책’ 조항 등 소비자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조항에 대한 공정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엄민용기자〉